노르스름한 얼굴에 새까만 머리를 한 한국인, 그리고 일본인. 한국과 일본은 지리상으로 이웃처럼 가까이 붙어 있는 만큼, 겉보기에는 어느 나라 사람인지 쉽사리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비슷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한국과 일본을 겪어본 이라면 두 나라간에 존재하는 많은 차이점을 쉽게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한국의 술인 ‘막걸리’와 일본의 술인 ‘사케’도 비슷하다. 얼핏 보면, ‘쌀을 누룩으로 발효시킨 술’, ‘각 나라를 대표하는 술’이란 점에서 꽤나 닮은 점이 많아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막걸리와 사케는 다른 술일지언정, 같은 흐름을 타고 움직이는 친구 같은 술이다. 흥망성쇠를 같이 해야 할 운명일지 모르는 이들, 대체 뭐가 같고 뭐가 다를까?
함께 성장할 수 있다, 우리는 닮았으니까!
막걸리의 영문명은 ‘Korea Rice Wine’, 사케의 영문명은 ‘Japanese Rice Wine’이다. 이 영문명에서 우린 막걸리와 사케의 공통점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다. ‘Rice’와 ‘Wine’이라는 단어에서는 이 술들이 ‘쌀’을 이용해 ‘발효’시킨 술이라는 점을, ‘Korea’, ‘Japan’이란 단어에서는 나라명이 붙은 만큼 ‘그 나라 고유의 술’이라는 점을 눈치채게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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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와 사케는 제조방법에 있어서나 외관상에서 차이점들을 가지고 있긴 하나, ‘쌀로 만든 발효주’라는 기본 베이스를 공통점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들은 서로간의 성장 혹은 하락세에 밀접한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이 두 술은 서로 경쟁을 하기보다 오히려, 어느 한 쪽이 흥하면 함께 따라서 흥할 수 있는 재미있는 관계에 놓여있는 것이다.
독하지 않은 술이 주목 받기 시작할 땐 다른 술에 비해 비교적 도수가 낮다는 이유로, 웰빙 열풍을 세계를 강타할 땐 ‘쌀’로 빚어낸 술이라는 이유로, 사케와 막걸리는 동시에 인기를 끌곤 했다. 국내 주류 시장만 봐도 그렇다. 사케 수입이 늘자 우리 민속주 업계에서는 이를 ‘반가운 일’이라 표현했다지? 그만큼 우리 나라의 주류 시장에서 소주와 맥주라는 터줏대감들은 입지가 커도 너~무 크다는 말씀. 다른 술들이 좀체 기를 펴지 못할 정도로 소비자들이 소주와 맥주에 편중된 상황이다 보니 국내 술 소비 추세가 좀더 다양화되길 바라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러니 사케든 막걸리든 소주와 맥주가 아닌 술이 흥하는 양상은 어느 쪽에게든 쌍수 벌려 환영할 일인 셈이다. 소싯적에 게임 좀 하셨다 하는 분들은 알겠지만, 너무 커진 세력을 무찌르기 위해서 작은 무리들이 연합하는 것과 비슷한 그림이 될라나?
막걸리의 경우는 쌀 뿐만 아니라 밀이나 보리, 옥수수 등 다양한 곡물을 원료로 하여, 발효를 시킨 후 여과하지 않고 혼탁하게 제조하는 술이다. 반면 사케의 경우에는, 원재료가 반드시 ‘쌀’이어야 하고 쌀 이외의 다른 곡물을 원료로 한다면 이는 ‘사케’라 부를 수 없다. 법에 위반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필히 술 찌꺼기와 액체를 걸러내야만 하는 점 역시 막걸리완 다르다. 술 제조시 사용하는 누룩마저도 다르다. 막걸리는 주로 밀로 만든 누룩을 사용하는데 반해, 사케의 경우는 주세법 때문에 반드시 쌀을 사용하여 만든 누룩만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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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가 4계절 변화에 반응하듯 사시사철 변화한다면, 사케는 반대로 한 시점에 머물러 있는 듯 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 각 계절에 나오는 다양한 과실이나 꽃, 곡물 등에 따라 다양한 막걸리를 만들어 마시고 있는 것에 비하여, 사케는 통상적으로 겨울에만 빚어내고 있어 계절성을 갖지 않는다. 사케를 겨울에 빚는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저온숙성이 가능한 계절이기 때문이다.
계절이나 상황에 관계 없이 쌀과 누룩으로만 깔끔하게 빚어낸 사케, 그리고 원재료부터 부재료까지 다채롭게 사용하는 막걸리는 상반된 모습으로 각기 다른 매력을 풍기고 있다.
최근 국내시장에는 수없이 많은 막걸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미 존재하는 막걸리의 종류만해도 1천여가지가 넘는다고. 기본적인 막걸리에 고구마, 인삼, 팥 등 곡물을 넣어 다른 맛을 가미하기도 하고 과일이나 꽃 등의 재료를 넣어 향이나 색을 더하기도 한다. 막걸리의 종류가 다양해지다보니 각각의 취향에 맞는 막걸리를 골라 마시기 좋아 맞춤화 서비스가 대세인 요즘 시대와도 잘 들어맞는다. ‘먹방’이란 단어가 유행할 만큼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막걸리의 흥행에 한 몫 했다. ‘먹방여행’이라는 먹거리 위주의 여행이 유행하면서 사람들은 여행지에서 유명한 명물 막걸리를 맛 보는 일에 또 다른 재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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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중년의 나이가 되신 분들은 막걸리에 대한 추억을 떠올릴 때 언제나 ‘양은주전자’를 언급한다. 모두가 가난하고 부족했던 1960-1970년대의 시절, 동전 몇 푼에 막걸리를 양은주전자에 한 가득 채워 들고온 경험을 갖고 있는 세대기 때문이다. 이 시절, 시원하게 걸치는 막걸리 한 잔은 하루의 고단함을 풀어주는 효자같은 존재였다. 당시 주류시장 부동의 1위를 자랑했던 막걸리는 색다르게 등장한 술들에 밀려 비주류로 잠시 밀려났다가, 트렌드에 딱 맞춘 듯한 모습으로 재탄생하며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요즘 술집에 자주 등장하는 퓨전막걸리는 오리지날 막걸리의 업그레이드 버젼이다. 슬러쉬 막걸리나 칵테일 막걸리가 퓨전 막걸리 중 한 종류. 막걸리에 각종 재료가 첨가되면서 알코올 도수는 낮아지고, 아름다운 색감은 더해진다. 형형색색의 막걸리는 부담 없는 가격에 풍족한 양을 자랑하며, 상큼하면서도 달짝지근한 맛으로 국내 뿐 아니라 외국인들의 마음까지 사로잡고 있다고.
야외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겨냥하여 출시된 캔막걸리는 최근 막걸리의 변신 중 가장 획기적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맥주처럼 어디든 들고 다니면서 간편하게 마실 수 있는 패키지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냉각 숙성 방법을 이용해 청량감까지 높였다. 더불어 알코올 도수는 4도로 낮춰 캠핑족 뿐 아니라 여성들까지도 음료수처럼 즐겨 마실 수 있게 했다고. 이 외에도 맥주의 변신은 무궁무진하다. 막걸리를 넣어 발효시킨 막걸리빵도 한 베이커리의 대표 메뉴로 당당히 자리 잡고 있고, 쌀 막걸리를 자연발효 숙성시켜 내놓은 쌀막걸리 식초도 인기다. 심지어는 막걸리 화장품까지 생겨나 인기를 끌고 있으니 막걸리의 미래가 창창하지 않은가.
들어는 봤나? 막걸리에는 항암효과가 있다. 식품연구원이 막걸리에서 발견해 낸 항암 성분은 바로 ‘파네졸’이었다. 막걸리에서 발견된 파네졸 함량은 다른 술에 비하여 10~25배 더 많이 들어있다고 하니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과음은 도리어 건강을 해치게 만들지만, 과해서 좋은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다만, 추후 밝혀진 바로는 막걸리를 마심으로 인해 직접적인 항암효과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하니, 그저 항암 성분이 있어 이롭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좋겠다. 막걸리는 꽤 많은 효능을 가지고 있다. (단, 이 모든 것은 과하게 섭취하는 것이 아니라 적당량씩 섭취할 경우에만 해당된다.) 막걸리를 꾸준히 적당량 섭취하다 보면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아지고 혈행을 개선해주어 고혈압과 같은 심혈관계 질환 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 혈액 내 요산의 농도가 높아질 경우 손발 끝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끼게 하는 ‘통풍’이란 질병에도 효과가 있다. 막걸리가 요산의 농도를 낮춰주는 기능을 하기 때문. 반면, 맥주는 요산의 농도를 높이는 ‘퓨린’이란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 뒤에 언급하겠지만, 막걸리에는 ‘페닐알라닌’이란 성분도 들어있는데, 이는 신경세포와 뇌 사이에 신호를 전달하는 성분의 생성을 촉진하는 물질이기 때문에 시력이나 기억력을 개선시키는 데도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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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분들 집중! 막걸리에는 ‘진짜’ 미용 효과가 있다. 첫째, 막걸리는 다이어트에 좋다. 포만감은 높은 반면, 1잔에 70kcal정도 밖에 되지 않는 낮은 칼로리를 자랑한다. 게다가 막걸리에 함유된 ‘트립토판’과 ‘메티오닌’이라는 성분이 체내에 지방을 쌓이는 것도 억제해준다. 둘째, 막걸리에 들어있는 비타민B와 페닐알라닌이란 성분은 피부결을 매끈하고 탄력 있게 만들어준다. 더불어 피부에 멜라닌 색소가 침착되는 것도 막아주는 기능도 있다. 셋째, 변비를 해결하니 피부도 맑아진다. 막걸리에 함유되어 있는 유산균의 양은 다른 유산균 음료에 비해 약 100~1000배에 달한다. 따라서 변비에 탁월한 효과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변비를 해결하면 피부가 맑아지는 것은 당연지사.
필자가 꽃피는 20대 초반이었을 무렵, 길거리에 즐비한 술집들 대부분은 크게 3가지로 분류될 수 있었다. 하나는 가장 인기가 많았던 ‘주점’이다. 소주와 맥주의 판매율이 7대3 정도를 이루는 술집으로 안주의 분위기는 일관성이 없기 일쑤였던 곳. 젊은이들은 마치 도시락 반찬 같은 안주들을 여러 개 시켜놓고 연신 소주를 들이켰으며, 나이 든 어르신들은 한 켠에서 마른 안주에 생맥주를 마시며 목청을 자랑했던 곳이 바로 그러한 ‘주점’이었으리라. 두 번째는 ‘호프집’이다. 튀김이나 마른 안주, 골뱅이 소면 같은 것이 안주의 주를 이루고 주점과는 달리 맥주와 소주가 7대3 비율로 팔리던 곳. 세 번째는 ‘전통주점’이다. 잊을 만하면 간간히 하나씩 등장하던 전통술집은 목조로 된 허름한 인테리어를 자랑하며 한국 전통의 부침개와 동동주를 팔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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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요즘 번화가의 술집들은 예전같지 않다. 지금 다양한 술집들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이자카야’다. 불과 몇 년만의 일이다. 간간히 보이던 일본식 선술집이 다양한 형태로 술집 골목을 점령했다. 꼬치구이, 철판구이, 사시미 등 주메뉴가 각기 다르긴 하지만 결국은 따지고 보면 죄다 이자카야다. 요즘 사케가 잘 나가느냐고? 술집 골목을 한 번만 스캔해봐도 그냥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외국 술은 왠지 편히 마시던 우리 나라의 술들과는 다르게 즐겨야만 한다는 부담감에 불편함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사케는 다른 술에 비해 정해져 있는 까탈스러운 주도가 없을 뿐 아니라, 쌀을 주식으로 하는 동양인들의 입맛에 잘 맞도록 만들어져 있어 부담감이 다른 외국술에 비해 현저히 적다. 와인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컨셉이 인기의 비결되기도 한다. 저렴한 일이만원대의 사케부터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고급사케까지 만드는 방식이나 재료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로 다른데, 고급 사케라 해도 와인보다는 저렴한 편에 속해 와인의 대체수단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다른 술에 비해 초심자에겐 어렵게 다가오고, 허세를 부린다고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와인에 대한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이미지들 때문에 와인 대신 비슷한 사케로 우회한 경우도 많다. 막걸리와 비슷한 면도 사케의 장점이다. 쌀로 만든 술이 웰빙 술이라는 인식이 만연해졌으니 사케 역시 몸에 좋은 술이란 인식이 강하다. 실제로도 막걸리의 효능과 비슷한 효능들이 사케에도 있다. 피부 미백효과나 암 발생 억제 효과, 원활한 혈액순환 효과 등이 있고, 천연 보습제로 불리는 아미노산에서 오는 피부 보습효과도 있다.
막걸리 안주로 부침개를 능가하는 것이 있을까. 밀가루에 각종 재료를 넣어 만드는 우리 나라 고유
음식인 부침개는, 어떤 재료를 넣느냐에 따라 이름을 달리하곤 한다. 잘 익은 김치를 송송 썰어 넣어 붉은 빛을 내는 김치 부침개, 오징어나 조개살을 파와 함께 넣고 잘 풀어둔 계란을 마지막에 끼얹어 마무리하는 해물파전, 다른 것은 일체 넣지 않고 부추를 쫑쫑 썰어 부쳐내는 부추전까지…이 모든 부침개들은 막걸리의 뗄 수 없는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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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부침개를 ‘한국식 피자’라고 칭했지만, 부침개는 따지고 보면 피자와 한 맥락이라고 볼 수가 없다. 넓고 동그랗게 펼쳐져 있는 겉 모양새, 그리고 토핑의 사용에 따라 종류가 달라지는 것 외에 대체 공톰점이 무엇이란 말인가. 기름을 자작하게 부어 부쳐내는 방식부터,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친숙한 주재료들, 결과적으로 그 맛까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부침개를 능가하는 막걸리 안주로는 두부김치, 도토리묵 등이 있는데 이 모든 것이 한국 특유의 전통적인 안주라는 점이 눈 여겨 볼만 하다.
한국 고유의 술인 막걸리가 한국 고유의 음식과 찰떡궁합을 자랑하는 만큼 사케 역시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케 안주로는 사시미가 가장 대중적이다.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인지 일본에서는 유독 해산물을 이용한 요리가 많다. 지방층이 도톰한 생선을 썰어 와사비를 풀어낸 간장에 콕 찍어 먹는 사시미는 깔끔한 사케의 맛을 더 돋보이게 해주는 훌륭한 안주. 물론, 일본풍의 샐러드나 싱싱한 해산물을 사용한 샐러드, 타코와사비나 스시류 등 이자카야의 메뉴판에 올라가 있는 메뉴는 웬만하면 사케와 다 잘 어울린다. 사케 자체가 까다롭게 안주를 골라야 하는 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사케는 따끈하게도 시원하게도 마실 수 있어서, 선호하는 방식으로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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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망성쇠를 같이 해야 할 운명일지 모르는 이들, 대체 뭐가 같고 뭐가 다를까?